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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학회 2016년 9월호 잡지 (3.1문화상 수상소감, 서진근)

 

 

우선 오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3.1 문화상(학술상)의 영예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수상소감은 순수수학자였던 필자가 의공학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게 되는 과정과 목표에 벗어난 현학적인 연구로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을 애기하고자 한다.

 

2001년 12월 31일 밤 11시쯤에 미네소타를 안식년을 보내던 필자는 우응제, 권오인교수에게 이메일(“노벨상 받는다”)을 보냈다. 그때, 필자는 생체를 MRI 장치 내에서 회전하지 않고 생체 내의 도전율 및 전류밀도 영상을 동시에 얻어내는 방식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환상적인 수리모델이 떠올랐다. 그 아이디어는 주입전류에 의해 유기된 자기장의 z-방향성분의 라플라시안이 도전율 분포의 변화를 전류밀도의 수직방향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우리는 목표 향해 닥치고 전진하였다. 문제점이나 난관이 발견되면, 전공에 상관없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내려고 했다. 수치시뮬레이션을 시작으로,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동물실험까지 새역사를 써가며 거침없이 전진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골인지점(임상에 적용) 바로 직전에서 마지막 난관을 넘지 못하고 멈춰 버렸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난관에 봉착할 때 마다, 이론가로서 쉬운 현학적인 연구에 빠지기 쉽고, uncertainty문제로 귀찮은 (실제상황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연구는 후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수없이 반성하고 고민해 왔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학계와 저널은 현학적인 연구를 멋있어 하는 경향이 있음)로 과감하게 떨치지 못하고 있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필자는 교수가 되고 나서까지도 시나리오 창조능력이 매우 취약해, 문제 해결형 수학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Eugene Fabes)로 부터 배운 것은 어려운 수학이란 없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무척 어렵다고 하는 이론도 (증명을 따라가는 대신) 수식내의 연관성을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몰입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몰입은 불면증을 동반하고,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흐리게 하여, 지엽적인 것에 올인하게되어 자기만족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감기 몸살에 시달리고 나서야,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듯하다. 늘 균형잡힌 시각에 대해 고민을 하지만, 필자 자신의 능력의 한계성으로 인해 자꾸 편협한 이론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론과 현실검증이라는 iteration process이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필자는 IMF 시작 무렵인 1998년부터 역문제의 순수이론 연구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응용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무렵 필자의 연구실에는 당시 대학원생이였던 김성환(한밭대교수), 우현균(과학기술대 교수), 윤정록(Clemson U. 교수, 당시 KAIST 학생)과 포스트닥터였던 권오인(건국대 교수)가 있어 응용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세미나중 우리가 필요로 했던 공학적인 지식을 다루는 E. J. Woo의 논문을 읽게 되었는데, 그가 1999년 겨울 응용수학포럼(KSIAM 전신)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까지 중국인으로 추측했었다. 우응제 교수와의 만남을 통하여 우리 수학팀은 공학 기술의 한계에 의한 실질적인 제한요소를 이해하게 됐고, 순수이론에서부터 생체실험에 이르기까지 검증 가능한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2000년초 연구 모임에서 우응제 교수는 자기공명 임피던스 단층촬영법(Magnetic Resonance Electrical Impedance Tomography, MREIT) 문제를 토론의 주제로 제기했고, 우리는 이 문제에 즉각적으로 막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MREIT에서는 주입전류에 의해 유기된 인체내부의 자속밀도 분포를 자기공명영상시스템으로 측정한 뒤, 이를 이용해 인체내부의 도전율 영상을 계산하여 화면에 출력한다. 도전율과 주입전류에 의해 유기된 자속밀도 사이의 관계는 복잡한 비선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공명 임피던스 단층촬영법에서는 다른 의료영상법들에 비하여 매우 복잡한 이론적 해석과 정교한 영상복원 알고리즘의 개발이 필요하다. 필자는 우응제, 권오인 교수와 수학이론을 통한 수리모델링에서부터, 알고리즘 개발, MRI 계측방식, 임상실험에까지 여러 분야의 지식을 상호 연계하고 융합하는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였다.

 

우리 연구팀은 도전율과 측정데이터 사이의 비선형적인 연관성을 기술하는 Biot-Savart 법칙을 분석해, 측정된 Bz 데이터의 2차 미분인 Laplacian이 도전율 분포의 등전위면 방향 변화율을 감지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두 개의 서로 독립된(linearly independent) 전류주입에 의해 측정대상 영역에서 유기된 두 종류의 전류밀도 벡터장이 이루는 평행사변형의 면적이 모든 영역에서 0이 아니라면, Bz 데이터만으로 충분히 도전율의 공간변화를 완벽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또한 수학에서의 기하학적 인덱스이론(Geometric index theory)을 이용하여 측정대상 물체의 표면에 적절하게 두 쌍의 전극을 배열하면, 주입전류에 의해 유기된 두 종류의 전류밀도 벡터장이 이루는 평행사변형의 면적이 모든 영역에서 영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러한 수학적 이론을 통해 도전율의 표현공식을 유도했고, 무회전 MREIT의 핵심 알고리즘인 harmonic Bz 알고리즘을 이 도전율 표현공식을 기반으로 개발하게 되었다. 이 표현공식은 도전율과 측정 데이터 사이의 비선형성으로 인해 암묵적 형태(implicit form)로 표현되나 고정점이론(fixed point theory)을 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즉, 수축매핑성질(contraction mapping property)을 갖도록 표현되어 있어 반복법(iteration method)을 적용할 수 있다. 이때, 흥미로는 점은 EIT(electrical impedance tomography)에서 도전율의 국소변화가 전류밀도의 변화에 둔감(ill-posedness)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무회전 MREIT의 개념을 세계 최초로 제안한 이후,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 이후 관련 수학이론과 실험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 이렇게 개발된 새로운 무회전 MREIT 방식은 현존하는 도전율 영상 기술 중에서 공간해상도가 가장 뛰어나다고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동물 및 인체 MREIT 실험에 성공했다.

 

2000년대 초기에 우리 전기임피던스 영상 연구실(IIRC)에 참여한 대학원생과 포스트닥터들이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권오인(건국대교수), 윤정록(Clemson U. 교수), 박춘재(건국대교수), 김성환(한밭대교수), 이석호(동서대교수), 김용정(KAIST 교수), 오동인(경희대 교수), Liu Jijun(Southeast U. 교수), Mourad Sini(Johann Radon Institute, Senior scientist)등은 자신의 분야에서 우뚝 선 과학자로 성장했다.

 

MREIT기술은 우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나, 임상에 적용하기 위해선 해결해야할 몇 가지 문제(측정시간 단축, 주입전류의 감소)가 남아 있다. 필자는 마지막 관문 앞에서 현학적인 연구에 시간을 소모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내가 무었을 하고 있지?”하며 자책하곤 했다. 그저 “열심히 연구하기만 하면 되지“ 하는 자기 만족은 낙엽같은 논문만 생산한다. 현실적인 난관을 넘기 부담스러우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논리의 완벽성에 집착하며, 제한적인 상황에서 결론을 도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혁신보다는 자신이 설정한 협소한 틀 안에서 극히 지엽적인 문제에 세월을 보내는 듯하다.

 

외국을 다니며 강연하다보면, 영어를 좀 잘했으면 훨씬 편하게 연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영어권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영어권의 유명대학 교수의 상당수는 유창한 영어구사로 새로운 틀의 창조는 없이, 최근의 연구 경향만을 파악해가며 기존 연구의 개선만으로 생존해 나가기도 한다. 최근 필자도 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창조를 되도록 피하려고 하고, 연구자문을 하며 기존이론을 개선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구조직에 대한 부담감과 실용적인 연구결과에 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나 보다. 3.1 문화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시 잡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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